중독된 여체 - 상편

중독된 여체 - 상편

레드코코넛 0 369

“하읏!, 읏!” 

 

점점 흐려지는 시야에 침대 머리 판의 격자무늬가 눈에 들어오고 있었다. 

하지만 난 다시 눈을 감을 수밖에 없었다. 

뒤쪽에서 살갗의 요란한 부딪침이 들려올 때마다 격정의 파도 하나가 사타구니 전체에서 퍼져 온 몸을 타고 목을 조여 오는 느낌에 참으려 애를 써도 자꾸만 신음이 흘러나온다. 

“하읏!” 

살갗을 파고드는 강인한 무언가에 다시 신음을 내질렀다. 

어지러워진 시트 위에 발정 난 암캐 마냥 엉덩이를 높이 치켜든 나는 밀려나오는 격한 신음을 막기 위해 시트자락을 당겨 입을 막아보았지만, 날 이토록 뜨겁게 만드는 남자의 육체는 너무 강했고, 난 그 남자의 귓전에 나의 짙은 신음을 고스란히 들려줄 수밖에 없다. 

“하아, 아읏, 읏····.” 

참아내지 못하는 신음, 그리고 점점 땀에 젖어가는 나의 나신, 

벌써 삼십분이 넘게 날 공격하는 남자의 공격에 의해 온 몸에 맺히는 땀방울처럼 나의 그곳도 내 육체가 뱉어낸 애액에 의해 흠뻑 젖었으리라, 

‘하아, 좋아···, 미치겠어, 이대로 죽어도 좋아···.’ 

차마 남자에게 할 수 없는 말을 가슴으로 말했다. 

이제는 나의 육체 모든 곳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남자. 

그 지식을 바탕으로 섹스를 나눌 때 마다 날 절정의 벼랑 끝으로 모는 남자, 

난 알지 못했다. 

이 남자를 만나기 전까지는 내가 이렇게 뜨거울 수 있는 여자였는지를 말이다. 

조용했던 여자, 

순종을 여자의 미덕으로 알았던 내가 지금처럼 남자의 품에 안겨 숨을 헐떡이고, 뜨거운 신음을 참지 못하고 이런 모습을 보이리라고는 말이다. 

그리고 난, 

섹스란 그런 것인 줄 알고만 있었다. 

그냥 조용히 남자를 받아들이고, 그 남자가 이끄는 대로 몸을 맡기면 그 뿐이라고 말이다. 

허나 이제 난 안다. 

섹스란 그런 것이 아님을, 

섹스란 뜨거움이며, 그 뜨거움을 상대에게 고스란히 드러낼 때, 그 상대방이 더 큰 뜨거움과 희열을 준다는 걸 이제는 알고 있다. 

그래서 난 나의 뜨거움을 이 남자에게 간혹 고스란히 드러낸다. 

내 몸의 실직적인 주인인 남편에게는 보여주지 못하는 뜨거운 모습을 말이다. 

“아읏!” 

남자의 공격이 빨라진다. 

허리를 거머쥔 남자의 손이 자신의 움직임에 맞춰 빠르게 당기기 시작 했다. 

나도 절정을 맞을 준비를 시작한다. 아니 이미 작은 절정은 나의 온 몸을 타고 흐르고 있었지만 이것과 비교 되지 않는 절정의 쾌감이 곧 몰아친다는 생각에 나는 입술을 굳게 물고, 주먹을 쥔 채로 뺨을 침대에 묻었다. 

이젠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내가 어떤 자세를 취하면 남자의 물건이 나의 몸 속 깊이 들어 올 수 있음을 말이다. 

엉덩이를 바짝 세워 남자를 받아 들였다. 

이어진 세찬 공격에 다시 정신이 아득해져 오는 순간 남편의 얼굴이 떠올랐다. 

왜 알려주지 못했던 걸까. 

섹스가 이렇듯 절정의 희열을 안겨주고, 그 희열이야 말로 세상의 어떤 감흥보다 짜릿하고, 중독성이 강하다는 것을 말이다. 

“·····.” 

다시 눈을 감아버렸다. 

남편에 대한 일말의 미안함이 금세 사리지고 있었다. 

대신 그 자리를 스멀거리며 피어오르는 희열의 감각이 채워가고 있었다. 이제 곧 절정의 순간이 다가 올 것이다. 남자는 내가 절정에 오르기를 기다리며 계속 펌프질을 해대고 있었다. 

다음 순간 나는 아랫배와 사타구니에 잔뜩 힘을 주기 시작했다. 

절정의 쾌감이 온 몸에 퍼지기 시작했다. 

나도 모르게 몸에 경직이 오기 시작했고, 온 몸에 힘을 주며 입이 잔뜩 벌어지던 순간 날 기다렸던 남자가 엉덩이에 아랫배를 밀착하며 나의 골반을 힘껏 잡아당기고 있었다. 

“아·····.” 

오늘 가졌던 섹스 도중 처음 듣는 남자의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와 동시에 나의 질 깊숙이 남자의 정액이 쏟아지고 있음을 생생히 느꼈다. 그 느낌이 더해지며 절정은 날 낭떠러지 밑으로 밀고 있었다. 

도대체가 끝이 보이지 않는 깊고 긴 낭떠러지로 말이다. 

 

 

 

‘·····.’ 

시간이 흐르며 목을 죄어오던 절정의 기운이 목을 풀어주자 난 숨을 거칠게 쉬었다. 

그리고 나의 질을 가득 메우고 있던 그의 물건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끼며 난 옆으로 눕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그는 나의 둔부를 잡아 세우고는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난 느낄 수 있었다. 들려진 엉덩이 사이에서 섹스의 흔적을 잔뜩 뒤집어썼을 나의 보지를 바라보고 있는 그의 시선을 말이다. 그런 그의 행동이 한때는 너무도 민망했지만 이제 난 그냥 그의 시선을 느끼고만 있다. 그가 싫증을 내기만을 기다리며 말이다. 

남자가 나의 치켜든 엉덩이에 입맞춤을 해주고 골반을 놓아주었다. 

난 기다렸다는 듯, 엉덩이를 내리고 웅크린 자세로 숨을 몰아쉬었다. 

남자가 침대에서 내려가고 있었지만 난 지금 손끝 하나 움직일 힘이 없다. 절정의 기운이 아직 온 몸을 휘감고 있었기 때문이다. 난 결국 얼마 후 남자가 수건 하나를 들고 다시 돌아 올 때까지 그 자세 그대로 엎드려 웅크리고만 있었다. 

“······.” 

차가운 물기가 사타구니에 닿고 있었다. 

아마도 수건을 적셔온 듯, 남자는 엎드려 있는 내 엉덩이 밑에 수건을 대고는 손바닥으로 내 보지를 닦아주고 있었다. 그렇게 몇 번인가 수건의 위치를 바꿔가며 보지를 닦아주던 남자가 꼬리뼈 부근에 입을 다시 맞췄다. 

난 천천히 고개를 돌렸고, 등을 보이고 앉아 자신의 물건을 젖은 수건으로 닦고 있는 남자를 가만히 응시했다. 움직일 때마다 등의 근육이 함께 움직이고 있었다. 평범한 몸매를 가진 남편과는 다른 탄탄함이 느껴지는 등이었다. 

그때 남자가 움직임을 멈추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괜찮아요?” 

“·····.” 

난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미소를 지어보인 남자가 침대에서 일어나 벗어 놓은 팬티를 입기 시작했지만, 난 물끄러미 그 모습을 바라만보고 있었다. 남자가 다시 나에게로 다가왔다. 

“일어날래요?” 

“아뇨, 옷 입고 먼저 가요.” 

“알았어요.” 

나의 말에 대답을 한 남자가 다시 자신의 옷을 입었고, 난 그가 옷을 모두 입은 와중에도 알몸 그대로 침대에 웅크린 자세로 그를 바라만 보았다. 

옷을 모두 입은 남자가 다가와 어깨에 입맞춤을 하고는 다시 미소를 지어주었다. 

언제보아도 이 남자의 미소는 근사하게만 보였다. 항상 날 이렇게 뜨겁게 만들어서이기도 하지만, 정말 부드러운 미소임에는 분명했다. 

“갈게요. 가게를 너무 오래 비울 수가 없어서···.” 

“······.” 

다시 고개를 끄덕였고, 다시 한 번 미소를 지어준 남자가 먼저 방을 나서고 있었다. 

잠시 후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고 웅크려 있던 난 길게 한숨을 내쉬고 천천히 상체를 세웠다. 

‘····.’ 

여전히 사타구니에서 느껴지는 절정의 기운에 미간을 살짝 찡그린 나는 방금 전 남자와 뜨거운 시간을 보냈던 침대를 가만히 응시했다. 

나의 손으로 직접 골라주었던 침대, 그리고 직접 사서 씌웠던 침대 시트까지····. 

난 그렇게 비록 내 집은 아니었지만 나의 손길이 닿은 침대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나의 나신을 천천히 내려다보았다. 

‘····.’ 

중독 된 여체, 

그랬다. 그와 난 지금 서로의 육체에 중독이 된 상태다. 

아니 좀 더 솔직히 말하면 내가 그의 육체에 중독이 됐다. 

우연히 시작됐던 이 관계에 내가 이렇게 중독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남편 말고는 남자를 몰랐고, 남편과 하는 섹스가 전부였던 그저 그런 평범한 여자였던 내가 이제는 하루라도 남자와의 섹스를 거르면 아쉬움을 느끼는 여자가 되어 버렸다. 

남자가 날 이렇게 바꿔 놓았다. 

나도, 내 삶도, 

그리고 내 육체도 말이다. 

난 이제 작은 꿈을 꾼다. 

그 남자가 나에게 그랬듯, 나도 그 남자에게 희열을 주는 여자이고 싶다는 꿈을 말이다. 그 꿈이 완전히 이루어지면 그는 나에게 더 큰 희열을 안겨 줄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남편은 결코 주지 못하는 크나큰 희열을 말이다. 

“·····.” 

천천히 침대에서 내려와 방을 나선다. 

이제는 낯익은 남자의 집안 풍경을 스치고 지나 욕실로 들어간 나는 거울속의 나를 가만히 응시했다. 

살며시 미소를 지어보았다. 

가식적인 미소·····. 

하지만 그 가식적인 미소가 지금의 나에게는 너무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 이곳에서의 내 삶은 타인에게는 보일 수 없는 가식적인 삶이기에 말이다. 

그런 나의 가식적인 미소를 잠시 응시하다 이런 나의 가식적인 삶을 만들게 된 지나간 하나의 추억을 떠올린다. 

우연처럼 시작되었던 3일간의 그 시간····, 

중독된 여체를 만들어버리던 그 3일간의 뜨거웠던 시간을 말이다. 

 

 

 

 

 

1. 그 여자, 승주의 이야기 - 죄어지는 운명 

 

 

“·····.” 

손끝이 살짝 떨려왔고 난 숨을 길게 들이마셨다. 

그저 무료했던 삶속에서 누군가와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를 주고받고 싶어 찾았던 한 펜팔사이트에서 한 남자를 만났다. 처음에는 그저 무료한 삶에 작은 소소함을 가지고 싶었던 시작이었다. 하지만 오고가는 메일이 쌓임과 동시에 그에 대한 신뢰도 생겼고, 어느 날부터인가는 그의 목소리가 궁금했다. 하여 남자의 제의를 부리치지 못하고 전화번호를 주고받았다. 

굵직했던 그의 목소리, 

두근거리는 가슴과 황망함에 제대로 대답조차 하지 못하는 나를 위해 그는 먼저 그날의 통화를 끝으로 그는 다시는 전화를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했다. 대신 용기가 나면 나에게 전화를 하라는 말을 남기고 말이다. 

정확히 일주일이 걸렸다. 

내가 그에게 다시 전화를 하기까지는 말이다. 

수많은 망설임과 설렘을 진정하고 다시 전화를 걸었을 때 그는 말했다. 

오늘은 1분만 통화를 하자고, 

그리고 그 다음번에 2분을 통화했고, 

그 다음 통화에는 3분을 통화했었다. 

그렇게 그 남자와의 통화 시간이 조금씩 길어지며 난 잊었던 떨림을 기억해 냈다. 

오래전 남편을 만나 수줍음에 설레던 그때 그 시간의 떨림을 말이다. 

허나 그 떨림은 오래가지는 않았다. 남자와의 통화가 잦아지고 환한 미소와 웃음을 거리낌 없이 주고받으며 그 떨림과 설렘은 이내 익숙함과 즐거움이 되어버렸다. 마치 내 삶에 완전히 동화된 삶의 일부처럼 말이다. 

“····.” 

핸드폰을 바라보던 내 시선이 시계를 향했다. 

늘 변함없는 시간에 걸려오던 그 남자의 전화가 오늘은 살짝 늦어지고 있다. 

난 다시 한 번 그 남자를 떠올렸다. 

서 승우, 

그 남자의 이름이다. 

비록 내 삶을 공유하는 그 누군가에게 이야기하지 못하는 사람이지만 이젠 내 삶을 공유하는 그 누구보다 나에게 즐거움과 소소한 행복을 전해주는 남자이다. 

그래서일까, 드러낼 수 없는 존재임을 서로 알기에 드러낼 수 없는 이야기도 주고받을 수 있었고, 그 비밀스러움이 더해지며 어느덧 우리는 좀 더 특별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이제껏 살아오며 한 번도 꿈꿔보지 못했던 그런 특별한 대화를 말이다. 

비밀스러운 우리만의 대화 말이다. 

‘리리리링···, 리리링···.’ 

핸드폰이 울렸다. 

난 반가운 마음에 얼른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여보세요.” 

“미안해요, 내가 조금 늦었죠. 일이 있어서···.” 

“아니에요. 괜찮아요.” 

대답을 하고 있었지만 난 이 남자가 무엇을 하는지 아직 모른다. 

서로가 정한 룰이 그랬다. 

이름과 나이 말고는 아무것도 묻지 않기로 약속을 했다. 사는 곳도, 하는 일도, 그리고 어떻게 삶을 사는지도 말이다. 그래서 난 그렇게 용기를 냈을지도 모른다. 비밀스러운 우리만의 대화에 말이다. 

하지만 그래도 조금은 궁금하고 조금은 서운했다. 

남자가 나에 대해 더 궁금해 하지 않은 것이 조금은 서운했고, 어떻게 생겼을지, 무엇을 하며 살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허나 먼저 묻고 싶지 않았다. 남자가 묻는다면 나에 대해 말해 줄 수 있을 만큼 승우가 가깝게 느껴졌지만 여자인 내가 먼저 우리의 룰을 깨고 싶지 않았다. 아니 그럴 용기가 없었다. 하나를 알면 그에 모든 것을 알고 싶어질지 몰라 말이다. 

“점심은 먹었어요?” 

“네, 승주씨는 먹었어요?” 

서 승주, 나의 이름이다. 

그와 난 중간 이름이 겹쳤고, 이름만을 듣는다면 얼핏 남매의 이름처럼 들린다. 

그와 처음 이름을 이야기하던 순간 그래서 웃었다. 이름이 너무 비슷하다는 이유만으로 미소를 지을 수 있었고, 우연처럼 나이가 갔다는 사실에 다시 한 번 놀라면서 그에 대한 경계심이 조금 무너지기도 했다.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서 비슷한 공통점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면 사람들이 얼마나 쉽게 경계심을 허무는지 승우를 통해 배웠다. 

“승주씨.” 

“네.” 

“오늘은 승주씨가 질문 한 가지를 할 차례니까, 어서 물어요.” 

남자의 말에 난 엷은 미소를 머금었다. 

세 달 전부터 서로 합의하에 정한 룰이었다. 두주마다 월요일 통화에서 한 번은 그가, 한 번은 내가 상대방에게 묻고 싶은 걸 물었다. 처음에 이 룰을 정할 때만 해도 혹여 그가 나에 관한 신상을 묻지는 않을까 했지만, 정확히 여섯 번의 질문을 하면서 그는 나에 대한 신상을 단 한 번도 묻지 않았다. 대신 다른 걸 물었지만 말이다. 

“나 오늘 세게 물을 건데 괜찮아요?” 

“네, 얼마든지, 대신 나도 다음에 강도 높은 질문을 할 테니까 그렇게 알아요.” 

남자의 말에 난 살짝 긴장했다. 

다음에 더 심한 걸 물으면 어쩌나 했지만 그렇다고 내 질문을 회피하고 싶지 않았다. 오늘만큼은 승우를 당황하게 하고 싶었다. 

“좋아요, 뭐 거부권 있으니까, 그거 쓰면 돼요.” 

“마음대로 해요.” 

슬쩍 오기가 났다. 

두 번의 대답 중 한 번의 패스할 수 있는 거부권을 승우도 나도 아직 쓰지 않았다. 지난 달 처음 질문에 그 거부권을 쓰고, 두 번째의 질문에 당황했던 걸 떠올린 나는 이번만큼은 신중하게 쓰기로 마음을 굳혔다. 

“좋아요, 그럼 물을게요.” 

“네.” 

난 괜히 가슴이 두근거림을 느꼈고, 살짝 숨을 들이 마신 뒤 굳은 표정을 지었다. 

“마지막 섹스는 언제에요?” 

질문을 던져놓고 얼굴이 빨개져 옴을 느꼈다. 

지난 번 가슴이 크냐는 그의 질문에 별러오던 나의 일격이었지만, 얼굴도 모르는 남자에게 묻기에는 너무 야한 질문이었다. 나의 어디에서 이런 용기가 생긴 걸까, 사람들 앞에서 큰 소리도 내지 못하는 내가 이런 질문을 하고 있다는 게 스스로도 신기했다. 

“2년 됐어요.” 

“·····.” 

조금의 틈을 두고 대답을 한 승우의 말에 난 순간 조금 당황했다. 

2년이라는 말이 믿어지지 않았다. 자신과 동갑인 서른여섯의 남자가 2년이나 섹스를 하지 않았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혹시 승우가 혼자인가, 아니면 남들이 보기에 외모가 형편없는 걸까, 난 짧은 시산에 많은 의문이 밀려왔다. 

“정말이에요?” 

결국 난 되묻고 말았다. 

“네, 사실입니다. 맹세코····.” 

“왜 2년이나?” 

난 또다시 물었다. 

단 한 번의 질문만을 할 수 없음을 알았지만 솔직히 믿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 나에게 다시 질문 하는 겁니까? 그 질문에 답을 듣고 싶으면 나도 질문을 할 수 있다는 건 잊은 거 아니죠?” 

“·····.” 

난 대답을 하지 못했다. 

룰이 그랬지만 솔직히 룰과 상관없이 듣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어떻게 해요, 대답해줘요, 아니면 말아요?” 

난 망설였다. 

그의 대답을 들으려면 이주가 걸린다. 그마저도 승우가 거부권을 쓴다면 다시 물을 수 없다. 어째야하나 망설였다. 

“거부권 안 쓸 거라면 듣고 싶어요?” 

“거부권이요?” 

“네, 그거 안 쓰는 조건이라면 알고 싶어요.” 

“왜요?” 

“승우씨 말 쉽게 믿어지지 않으니까.” 

나의 말에 승우가 잠시 망설이는 듯 아무 말이 들려오지 않았다. 승우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온 건 몇 초의 시간이 지난 뒤였다. 

“실은 나 혼자 살아요.” 

“혼자?” 

“네, 결혼은 했는데, 이혼하고 혼자 살아요. 이혼하고 장사를 시작했는데 항상 늦게 끝나서 여자를 만날 시간이 없어요. 그러다보니 그렇게 됐어요.” 

“그럼, 2년 전이란 말은?” 

“이혼하기 전이에요, 이혼하기 바로 전에····.” 

승우의 목소리가 살짝 흔들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더 묻고 싶었지만 물을 수가 없었다. 내가 더 물으려 한다면 승우도 그만큼의 숫자만큼 나에게 물을 테고 한 번의 거부권만을 가진 난 망설여졌다. 

“승주씨.” 

“네.” 

“갑자기 말이 없는 걸 보니, 내가 왜 이혼했는지 궁금한 거죠?” 

갑작스런 승우의 물음에 난 무슨 잘못을 들킨 사람처럼 흠칫 놀랐다. 

“아뇨.” 

난 거짓으로 대답을 했다. 

승우가 무엇을 물을지 몰랐기에 더 물을 수가 없었다. 

“그래요, 난 그냥 이야기 해주려고 했는데, 싫다니 할 수 없죠.” 

“······.”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미 늦었다. 

이제와 다시 말해 달라고 하기에는 조금 우스운 모양이 되어버렸다. 

“그럼, 약속대로 내가 물을 차례죠.” 

“·····.” 

난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하지만 난 이내 침착함을 가장했다. 

“네, 뭐든지 물어요.” 

“흐음, 좋아요, 그럼 뭐가 좋을까.” 

내심 긴장감이 들었다. 그리고 귓전을 파고드는 목소리에 난 조금 당황하기 시작했다. 

“승주씨는 언제에요? 마지막 섹스···.” 

나와 같은 질문이었다. 

조금 예상은 했지만 막상 들으니 가슴이 두근거렸다. 

승우가 혼자임을 오늘 알았지만 자신은 아니었다. 승우는 아직 모르지만 난 남편이 있는 유부녀다. 그리고 이른 결혼 탓에 올해 중학교에 들어간 아들도 있고 말이다. 

승우의 그 질문은 남편과 자신만의 은밀한 시간에 대한 물음이었다. 

물론 자신도 그런 생각을 하며 묻기는 했지만, 언제부터인가 승우가 혼자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었다. 그래서 조금은 쉽게 물었던 질문이었다. 자신처럼 결혼한 유부남인지, 아니면 내 생각대로 혼자라면 여자가 있는지가 솔직히 궁금했다. 그래서 질문을 던졌고 승우의 대답에 알 수 없는 안도감도 느꼈던 것이다. 하지만 반대의 입장이 된 지금 난 망설였다. 

순간 거짓말을 할까 생각도 했다. 

하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자신의 어긋난 삶을 솔직히 이야기 한 승우에게 미안했다. 그래서 거부권을 쓸까 망설였다. 어째야 할까, 난 조금의 망설임 끝에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한 달 됐어요, 지난 달····.” 

결국 난 사실을 이야기 했다. 

지난 달 남편과 섹스를 했다. 약간의 술에 취해 들어온 남편이 오랜만에 날 안으려 했다. 십 사년이란 시간이 지나며 남편은 이제 나와의 섹스를 무슨 행사처럼 치루고 있었다, 그래서 난 오랜만에 날 안아주는 남편을 반갑게 맞았었다. 비록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오랜만에 느껴보는 남편의 체취가 난 너무 좋았었다. 

스무 살이 되던 해에 처음 남편과 섹스를 했고, 이제껏 나의 육체를 안은 유일한 남자였던 남편이 언제부터인가 날 안아주지 않기 시작했지만, 그래도 가끔 그 날처럼 남편이 날 안아줄 때면 난 행복했다. 아직 날 여자로 안아주는 남편이 고맙기도 했고 말이다. 

“그랬구나, 나만 불쌍하네.” 

“·····.” 

불쑥 던진 승우의 푸념 섞인 말에 나도 몰래 미소가 머금어졌다. 

“승주씨.” 

“네.” 

“·····.” 

아직 가시지 않은 황망함에 얼굴을 붉히던 난 승우의 대답에 빠르게 대답했다. 하지만 승우의 말이 바로 이어지지 않았다. 

“왜 불러놓고 아무 말이 없어요?” 

“아, 아니에요, 됐어요.” 

머뭇거리는 승우의 말에 난 조금 짜증이 났다. 

무언가 말을 하려다 멈추는 행동은 내가 제일 싫어하는 행동이었다. 

“뭔데요, 말 해봐요, 나 말 하려다 멈추는 거, 제일 싫어해요.” 

“아, 그게···, 오늘 승주씨가 룰을 한 번 깼으니까, 나도 한 번만 깨면 안 되냐고 물으려고 했는데 그만 두기로 했어요.” 

“왜요?” 

“자꾸 이러면 우리 룰도 망가질 것 같고, 그러다보면 날 믿는 승주씨의 마음도 흔들릴 것 같아서요.” 

“·····.” 

난 미소를 지었지만 한편으로는 조금 아쉽기도 했다. 

어쩌면 그건 내가 바라는 것일지도 모른다. 모든 것에 용감하지 못한 나를 대신해 승우가 먼저 용감해졌으면 싶지만 처음 통화를 할 때 내가 보였던 반응이 승우에게는 하나의 각인처럼 남은 듯 했다. 조금만 날 힘들데 하며 자신을 피할지도 모른다는 그런 생각이 말이다. 

물론 처음에는 그랬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오늘 같은 질문을 주고받을 만큼 허물이 많이 거둬졌지만, 사람의 첫인상은 그만큼 강한가보다, 아니면 그동안 내가 알게 모르게 승우에게 그런 모습을 보였던가 말이다. 허나 그래도 한편으로는 그런 승우가 조금은 미더웠다. 날 위해 자신의 욕심을 접는 승우가 고맙기도 했고 말이다. 

“어디 살아요?” 

난 불쑥 한 마디를 던졌다. 

왜 인지는 모르지만 그러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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